하노이 구시가지(Old Quarter)의 타히엔(Tạ Hiện) 거리는 저녁이 되면 인도에 빨간 플라스틱 의자 수백 개가 줄지어 놓여요.
의자 높이가 어린이용 같은데, 다 큰 어른들이 그 위에 무릎을 접고 앉아 맥주를 마셔요. 한 잔 가격이 커피 한 잔보다 싸요.
테이블마다 잔을 들고 "Một, hai, ba — dô!" 하고 외치며 다 같이 잔을 부딪쳐요.
이게 비아 호이(bia hơi)예요. 단순한 맥주가 아니라 하노이 저녁의 정체성이에요.
체코 기술과 이어진 맥주
비아 호이의 역사는 의외로 외국 기술과 이어져 있어요. 1950년대 후반 베트남은 체코슬로바키아에 맥주 양조 기술 지원을 받았어요.
당시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에서 막 독립한 직후였고, 사회주의 형제국 체코의 기술 원조를 받았어요.
체코 기술자들의 도움으로 하노이의 맥주 생산이 다시 자리를 잡았고, 그 흐름이 오늘날 'Habeco(하노이 맥주)'로 이어져요. 비아 호이는 처음부터 노동자 계층을 위한 저렴한 맥주였어요.
비아 호이의 핵심은 '저장하지 않는 맥주'예요. 매일 만들어 매일 다 팔아요.
비아 호이는 알코올 도수가 낮아요. 보통 3~4%예요. 체코식 라거 기법으로 만들지만, 방부제와 살균 처리를 거의 하지 않아요.
그 대신 그날 안에 다 마셔야 해요. 양조장에서 새벽에 만든 맥주가 트럭에 실려 거리 가게로 배달되고, 그날 저녁에 사람들이 다 마셔요.
이 단순한 시스템이 수십 년째 유지되고 있어요. 매일.
왜 이렇게 쌀까
비아 호이는 한 잔 가격이 아주 저렴해요(가격은 가게마다 달라요). 외국 관광객이 처음 들으면 "에이 농담이지?" 하고 의심할 정도예요.
이게 가능한 이유는 몇 가지예요.
첫째, 유통이 거의 없어요. 양조장 → 트럭 → 가게. 끝. 병에 담거나 라벨링하지 않아요. 큰 스테인리스 통(keg)에 담아 그대로 가져가요.
둘째, 마진이 작고 회전이 빨라요. 가게가 한 잔에 남기는 돈은 적지만, 저녁 동안 아주 많은 잔을 팔아요.
셋째, 가게 자체가 단순해요. 빨간 플라스틱 의자, 작은 알루미늄 테이블, 길거리 공간. 임대료가 거의 없거나 인도에 펴 놓는 공간이에요. (참고로 단속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베트남 도시 행정은 어느 정도 눈감아 줘요.)
넷째, 맥주가 단순해요. 맥아, 홉, 효모, 물. 그게 다예요. 첨가물 없고, 보존 처리 없고, 라벨도 없어요. 비용이 낮아요.
하노이의 비아 호이 거리들
하노이에서 가장 유명한 비아 호이 거리는 단연 'Tạ Hiện(타히엔)'이에요. 구시가지 한복판, 호안끼엠 호수에서 도보 5분 거리예요. 저녁이 되면 길 양쪽이 빨간 의자로 가득 차서 차도 못 다닐 정도예요.
다른 유명한 곳들도 있어요.
- Bia Hơi Hải Xồm. 하노이 노동자들이 즐겨 가는 체인. 가게 분위기가 진짜 로컬이에요.
- Lương Ngọc Quyến 거리. 타히엔 옆 골목. 좀 더 조용해요.
- Bia Hơi Cường Hói. 현지 사람들이 주로 가는 동네 비아호이. 외국인은 거의 없어요.
타히엔이 '국제 비아 호이' 거리라면 다른 곳들은 하노이 사람들의 일상 공간이에요. 가격은 비슷한데 분위기가 달라요.
안주는 거의 정해져 있어요
비아 호이 가게에서 시키는 안주는 거의 표준화되어 있어요. 가장 흔한 게 '넴쭈어잔(Nem chua rán)' — 베트남식 발효 소시지 튀김이에요. 노릇하게 튀긴 작은 소시지가 여러 개 나오고, 매콤한 칠리 소스에 찍어 먹어요.
그 외에 '더우느엉(Đậu nướng)' 두부 구이, '까느엉(Cá nướng)' 작은 생선 구이, '락장무오이(Lạc rang muối)' 소금 땅콩 볶음. 다 가벼운 안주들이에요. 비싼 메뉴를 안 시켜도 눈치가 안 보여요.
('Phở cuốn'도 잘 어울려요. 넓게 편 쌀국수 면에 쇠고기와 상추, 허브를 말아 새콤달콤한 소스에 찍어 먹는데, 비아 호이랑 잘 맞아요.)
의자가 왜 그렇게 작을까
처음 비아 호이 가게에 가면 가장 황당한 게 의자예요. 어린이용 같은 낮은 높이라서, 다 큰 사람이 무릎을 접고 앉아야 해요. 왜 이렇게 작을까?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 인도 공간 효율. 좁은 인도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앉히려면 의자가 작아야 해요.
둘째, 단속 시 빠른 철수. 의자를 한 손으로 들어 옮길 수 있어야 해요. 단속이 오면 금방 다 치울 수 있어야 해요.
셋째,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하는 문화. 베트남 사람들은 친구끼리 가까이 앉는 걸 좋아해요. 작은 의자에 빽빽이 앉으면 자연스럽게 거리가 가까워져요.
이 작은 의자가 비아 호이 문화의 상징이 됐어요. 인스타그램에 '#biahoi'를 검색하면 빨간 의자 사진이 잔뜩 나와요.
외국인이 잘 모르는 매너
비아 호이에서 통하는 작은 매너가 있어요.
- 건배할 때 'Một, hai, ba — dô!' (하나, 둘, 셋, 건배!). 베트남 친구들과 마실 때 같이 외치면 분위기가 달라져요.
- 잔을 다른 사람보다 살짝 낮게. 윗사람과 건배할 때는 잔 위치를 약간 낮춰서 부딪치는 게 매너예요.
- 현금만 받는 곳이 많아요. 카드는 거의 안 돼요. 작은 동(VND) 지폐를 미리 준비하세요.
사라지는 풍경?
근래 하노이에서 비아 호이 가게가 줄고 있어요. 인도 점거 단속이 강해졌고, 임대료가 올라서 작은 가게가 견디기 힘들어요. 무엇보다 젊은 세대가 '크래프트 비어' 같은 새로운 맥주 문화에 빠지고 있어요.
그래도 타히엔이나 떠이호(Tây Hồ) 같은 핫한 동네에서는 여전히 매일 저녁 빨간 의자가 가득 차요. 수십 년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동네에서 사람들이 이 풍경을 만들어 왔어요.
하노이에 갈 일이 있다면 호텔 식당 말고 저녁 7시쯤 타히엔에 가서 빨간 의자에 앉아 보세요.
싼 맥주 한 잔, 옆 사람과 어색한 영어로 인사 한 번. 그게 하노이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될 가능성이 커요. 풍경이 너무 빨리 변하기 전에.





